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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의 보물★ JET 체험기

  • 국제교류원으로 보낸 3년 동안의 기억들
  • 2017-09-15
  • 김수해

    도야마현 2007년4월~2010년4월 CIR

    도야마현 국제과

  • 1. 번째 도전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눈 내리던 날 내 손을 잡아주던 이와세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는 지금쯤 고등학생이 되어 있겠지?’, ‘한국어로 천진난만하게 말 걸어주던 그 아이, 지금쯤 사회인이 되어 있을까?’ 국제교류원으로 근무했던 3년간, 도야마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가끔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있다. 2007년 4월, 서울에서 도야마의 벚꽃을 볼 수 있길 손꼽아 기다리던 순간, 그리고 곧 눈앞에 펼쳐졌던 현청 앞 마쓰가와 강가에 벚꽃 잎 흩날리던 첫날의 풍경은 시간이 지나도 설레던 그 느낌 그대로, 환하고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학 졸업 후, JET 시험에 한 번 낙방을 하고, 두 해 가까이 나름 전공을 살려 취업한 회사 생활을 이어가던 중,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던 'JET프로그램“. 새로운 세계를 마주해보고 싶다는 마음과 ‘내가 국제교류원이 된다면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라는 작은 기대감에 다시 한번 용기를 내 JET프로그램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회사 생활을 하며 이수해두었던 한국어교사양성과정과 혹시나 시골에 부임하면 유용할 듯싶어 따둔 운전면허증, JET 시험 준비를 위해 가입했었던 스터디 모임과 주말마다 도서관에 들러 시사 상식 책을 열심히도 찾아봤던 기억이 새롭다. 합격에 대한 100%의 확신은 없었지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한다는 설렘은 스스로에게 즐거운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도야마국제센터에서 바라본 다테야마 전경

    2. 다른 세계, 그리고 대한 새로운 발견
    도야마는 대학생 시절에 교환학생으로 1년간 지낸 적이 있어서 도야마 현청 국제과로 부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익숙한 곳에서 나를 맞아주는 그리운 얼굴들과 곳곳의 낯익은 풍경은 여전히 반가웠다. 도야마 시내를 가르는 진즈강을 건널 때면 언제나 자연스레 나의 자전거 페달을 멈추게 만들었던 다테야마의 멋진 설경과 청량감. 그래서 기꺼이 그 풍경에 시간을 내어주고 싶은 곳. 도야마는 지금도 나에게 그런 곳이다.

    3년간의 JET프로그램을 내 인생에서 정의하자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도야마는 3,000m가 넘는 다테야마연봉이 도시를 감싸고, 바다를 가까이 접하고 있는 풍요로운 자연이 도시의 여유로움을 자아내지만, 나는 그 속에서 어딜 가나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부단히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며 때론 부딪치고, 때론 함께 웃었다.

    첫해 봄, 한국의 매스컴을 초청하여 도야마의 매력을 어필했던 관광과 수행 통역을 시작으로, 다양한 팸투어와 현 지사 예방, 리셉션 통·번역을 맡으며, 한국에서 손님이 올 때면 제발 날씨가 좋아 하늘 뒤에 감춰진 푸른 다테야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길 나의 동료들과 진심으로 바랐고, 현 내 각종 국제 교류의 중심에서 한국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책임감과 자부심도 느꼈다.

    특히, 시찰 통역은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본 사회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차로 한 시간 가까이 올라야 갈 수 있는 별이 가까운 마을 도가무라(利賀村)에 옛 사람들의 삶이 묻어나는 합장 양식 전통 가옥을 이용하여 예술촌을 형성하고, 무대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鈴木忠志)의 색다른 연출을 더해 세계 사람들이 찾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무더운 여름 정장을 입고 한국정부시찰단을 수행하며 반나절 동안 3편이나 되는 연극을 내리 감상했던 추억과 함께 상당히 흥미롭게 기억된다.


    마지막 학교 방문을 함께했던 난토다이라 고등학교 학생들

    JET프로그램의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한국을 연결하고, ‘한국’을 테마로 많은 사람들과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을 고민하며 만든 자료를 가지고 현 내 여러 단체와 학교를 방문하여 한국 문화 이해 강좌를 진행했던 것과 삼삼오오 모여들어 가르쳐 준 한국어로 반갑게 인사해주던 학생들, 매주 수요일마다 궂은 날씨에도 도야마국제센터 한국어 강좌의 자리를 메워주던 나의 수강생들과 나눴던 즐거움은 소소하지만 3년간의 어느 기억보다 소중하다.

    소심한 구석이 있는 나에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언제나 남모를 노력들을 필요로 했지만, 어느새 그 동네의 베테랑이 되어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고, 그 안에서 많은 이들에게 받았던 응원과 에너지는 나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했고, 돌이켜보면 자신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확신을 갖게 해준 기회이기도 했다.
     
     
    도야마 현 JET들과 함께 한 채리티쇼 뮤지컬

    또한 도야마에서는 매년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된 JET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직접 뮤지컬 공연을 펼치는 채리티쇼와 인터내셔널카페, 키즈 코너 등을 통해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JET 세계 축제를 개최하는데, 오타쿠가 따라올 법한 아키하바라 메이드와 ALT들을 학생으로 영어선생님 역할을 맡아, 1인2역을 연기했던 채리티쇼는 지금은 각국에 흩어져 있지만 JET로 연결된 외국인 친구들과 가끔 꺼내어보는 좋은 추억거리이다. “축제의 성공적 개최”라는 공동 목표 아래, 소품 준비부터 행사 진행까지 서로 다른 나라의 교류원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조율해가며 다양한 문화권의 사고방식을 접할 수 있었고, 함께 모이면 절로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 나오던 현 내 CIR 정례회는 지금도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을 볼 때면 그 속에 들어가 있던 우리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3. 새로운 시작을 이어준 JET프로그램
    “일본은 이별의 계절 3월, 한국은 시작의 계절 3월”. 귀국하던 해의 봄은 정들었던 풍경, 그리고 사람들과의 헤어짐으로 일본에서의 여운이 깊게 남아 있다. 진한 아쉬움과 함께 또 다른 시작의 설렘이 교차하던 그때, 막연하게나마 한국에서도 소중했던 JET의 경험을 살려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었다. 늘 그렇듯 현실은 나의 바람과 쉽게 타협해 주지 않았지만, 기업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고 도전을 거듭하며, 꿈처럼 국제 교류 업무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찾아왔고, 현재는 한국의 자치단체 산하 국제 교류 기관에서 일본과의 교류를 6년째 담당하고 있다.

    JET프로그램이라는 경험의 밑바탕 위에 또 다른 위치에서 국제 교류라는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도야마시 한국어 학습자와 일본어를 공부하는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교류가 실현되어, 나의 인연으로 하여금 다른 인연들이 생겨나고, 얼마 전 봤던 애니메이션의 빨간 끈처럼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뿌듯함이 느껴진다. 또한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고군분투해야 하는 나에게 국제교류원으로서의 경험은 지금의 일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든든한 지원군이며 원동력이다.
     
    4. JET프로그램 참가를 목표로 하는 후배들에게                            
    JET프로그램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개인의 목표, 해외 생활에 대한 기대, 취업 등 각기 다양한 목적과 기대감을 갖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JET프로그램은 분명 좋은 근무 환경 아래, 어쩌면 한국에서보다는 업무나 생활 면에서 여유로운 일상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JET프로그램을 단순히 취업선상에서의 대안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한국을 알리고 내가 있는 지역과 한국을 잇는다는 사명감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 진심을 나눌 줄 알고, 그 속에서 자신의 틀을 깨고 나와 다음 스텝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JET 경험의 의미를 찾는 건 결국 자신의 몫이지만, 반드시 그 이상의 값진 의미를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풍부한 인생은 만남의 수에 비례한다.” 얼마 전 다녀온 일본 출장에서 이 환영 인사말을 통역하며, JET를 통해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을 떠올렸다. 나의 삶의 카테고리를 넓혀준 도야마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과 앞으로도 JET를 통해 이어질 인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JET프로그램에 도전하려는 후배들에게도 이 글로 작게나마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