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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Sky-일본・두 번째 고향-

  • 【이시카와현】일본의 1%, 이시카와현
  • 2023-11-20
  • 정소원

    이시카와현 2011년 4월 ~ 2014년 4월 CIR

  • 일본의 1%, 이시카와현
     
     일본 열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이시카와현은 그 면적과 인구가 일본의 1%에 해당하는 현입니다. 이시카와현의 모양도 어딘가 모르게 일본 지도를 축소해 놓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 않나요?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 국내 여행객들에게는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시카와현은 일본의 1%답게 일본의 다채로운 모습을 콤팩트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시카와현은 크게 3개의 지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시카와현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이자 에도시대 옛 거리의 모습도 충실히 보존되어 있는 현청 소재지 가나자와시, 일본 3대 명산의 하나로 꼽히는 하쿠산이 뻗어있는 가가(加賀) 지구, 세계농업유산으로 인정된 사토야마 사토우미의 노토(能登) 지구 등 이시카와현에는 다양한 모습들이 공존합니다.
     이렇듯 훌륭한 자연환경과 볼거리, 문화를 가진 이시카와현입니다만, 본 지면에서는 제가 3년간 근무하며 알게된 조금 더 디테일한 이시카와현의 이모저모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햐쿠만고쿠 퍼레이드 - 매년 주목받는 도시이에 역할

     이시카와현의 현청 소재지 가나자와에서는 매년 6월 첫째 주에 ‘가나자와 햐쿠만고쿠 마쓰리’가 열립니다. 가나자와시의 대표적인 마쓰리로, 3일간에 걸쳐 개최됩니다. 이 마쓰리의 하이라이트는 ‘햐쿠만고쿠 퍼레이드(百万石行列)’인데요. 이 퍼레이드의 중심에는 ‘마에다 도시이에’ 라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마에다 도시이에는 에도 시대에 이시카와현과 도야마현 일대(가가국, 노토국, 엣추국)인 ‘가가번(加賀藩)’을 지배하던 마에다 가문의 시조입니다. 햐쿠만고쿠 퍼레이드는 마에다 도시이에가 1583년 6월 14일 가나자와성에 입성한 것을 기념하여 퍼레이드로 입성 행렬을 재현한 것입니다. 가가번은 ‘가가햐쿠만고쿠(加賀百万石)’라고 불리며 에도시대 제1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부유한 번이었습니다. 햐쿠만고쿠다카(百万石高/백만 고쿠다카)는 에도시대 때 가가번이 1년 동안 생산할 수 있는 쌀의 양으로, 에도시대 다이묘 중 독보적인 1위였고 이 때문에 가가번은 항상 막부에게 있어 경계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막부의 경계를 완화하기 위해 가가번에서는 문화 사업에 힘을 쏟았는데요. 이시카와현이 100만 명당 인간 국보(인간문화재)의 수가 전국 1위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이 지역에서 수많은 공예 기술과 전통 예능이 발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자와 햐쿠만고쿠 마쓰리 출발식©가나자와시 / 햐쿠만고쿠 퍼레이드©가나자와시

     다시 햐쿠만고쿠 퍼레이드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퍼레이드에 등장하는 마에다 도시이에의 위상을 어느 정도 느끼셨나요? 실은 이 퍼레이드에서 마에다 도시이에는 매년 인기 배우들이 역할을 맡습니다. 매년 어떤 배우가 도시이에 역할을 맡는지가 화두로 떠오르는데요. 퍼레이드 자체도 이사카와현내의 방송국에서 중계를 할 정도입니다. 2019년을 마지막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되었던 이 행사가 2022년에 재개되었을 때 도시이에 역할을 맡은 배우는 ‘다케나카 나오토’였다고 합니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미르히 등으로 한국에서도 친숙한 배우입니다. 참고로 도시이에에게는 ‘오마쓰’ 라는 아내도 있는데요. 이 해의 ‘오마쓰’ 역할은 킬빌의 교복 소녀로 알려진 ‘구리야마 치아키’였다고 합니다. 3년 만에 가나자와 일대를 누비며 입성하는 멋진 마에다 도시이에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34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고 합니다.

    겐로쿠엔 유키즈리의 유래

     일본의 겨울은 한국보다 따뜻하다고 흔히 말하는데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적어도 이시카와현의 겨울은 그렇습니다. 연간 강수량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시카와현은 연중 반 이상이 구름 낀 날씨입니다. 기본적으로 날씨가 흐리다 보니, 이시카와현의 겨울은 조금 더 춥게 느껴집니다. 여름에 내리는 장맛비에 못지않게 겨울에도 많은 눈이 내려서 이시카와현에는 ‘도시락은 잊어버려도 우산은 잊어버리지 마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시카와현은 왜 이렇게 강수량이 많은 걸까요? 이유는 동해(일본해)에 면해있기 때문입니다. 동해 쪽에서 불어오는 습기가 가득한 계절풍이 비와 구름을 만듭니다. 겨울에 내리는 눈에도 습기가 많아 로맨틱하게 쌓이는 눈보다는 시커멓게 질척거리는 눈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유키즈리 작업©이시카와현관광연맹 / 유키즈리 라이트업©이시카와현관광연맹

     여기까지 읽으면 ‘이시카와현은 날씨가 매력적이지 않잖아!’라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질척한 눈이 어떤 것을 만들어 냈는지 아신다면 일본 3대 명원으로 알려진 겐로쿠엔의 겨울을 120%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나자와성 옆 다이묘의 정원으로 만들어진 겐로쿠엔의 매력은 계절을 따지지 않는데요.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청량한 수목, 가을에는 단풍이라면 겨울의 볼거리는 단연 유키즈리입니다. 겐로쿠엔에는 유명한 소나무가 있습니다. 가가번 13대 번주인 나리야스가 현재의 시가현에 해당하는 오미국(近江の国)의 오미 팔경 중 하나인 가라사키 소나무를 가져와 키운 것입니다. 겐로쿠엔의 겨울은 이 가라사키 소나무에 유키즈리를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유키즈리란 습기가 많아 무거운 눈 때문에 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나무의 꼭대기에서 새끼줄을 내려 가지를 지탱하는 기술인데요. 매년 유키즈리를 설치하는 장인들의 모습이 매스컴을 타기도 하고, 유키즈리가 완성되고 나서 라이트업 기간이 되면 환상적인 무드를 즐길 수 있습니다. 혹독한 겨울 날씨를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전통 기술로 극복한 유키즈리는 이시카와현의 자랑스러운 겨울 풍경입니다. 
     

    겐로쿠엔의 유키즈리 

    색다른 체험농가 민숙

     이시카와현의 노토 지구는 ‘일본 호텔・료칸 100선’ 1위에 빛나는 ‘가가야(加賀屋)’가 위치한 와쿠라시를 포함해 4시(市) 5정(町)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11년 6월, ‘노토의 사토야마 사토우미’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일본 최초로 세계 농업 유산에 등록되었는데요. ‘사토야마 사토우미(里山里海)’란 인간이 농업이나 어업을 통해 자연을 적절히 이용하며 자연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지역, 즉 인간과 자연이 함께 지속 가능하게 살아가는 지역을 말합니다. 노토에는 이러한 사토야마 사토우미 속에 사는 삶을 체험할 수 있는 농가 민숙이 많습니다.

    다국어 정보지 이시카와 익스프레스 (표지)

     이시카와현에서 근무하던 시절, 여러 업무 중에 다국어 정보지를 만드는 업무가 있었는데요. 이 정보지에 실을 기사를 쓰기 위해 노토에 있는 ‘춘란의 마을’이라는 농가 민숙 마을로 취재를 간 적이 있습니다. 이 농가 민숙에서의 즐거웠던 체험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맨 처음 했던 체험은 산나물 채취로, 깊은 산속 맑은 계곡물 옆에서 자라는 ‘우와바미소(蟒蛇草) 나물’을 잔뜩 땄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흐르는 개울에서 민물 낚시를 체험할 수 있었는데요. 미끼로 사용하는 유충을 만지는 것이 조금 힘들었지만, 처음으로 해본 민물 낚시의 손맛은 뿌듯함 그 자체였습니다. 잔뜩 채취한 나물과 물고기를 민숙에 가져가면 주인분께서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 주십니다. 밥을 짓기 위한 땔감도 직접 팼습니다. 체험을 마치고 드디어 식사 시간. 우와바미소 나물은 특별한 조미료 없이 간장과 고춧가루만 넣어 볶았는데도 아삭아삭한 맛이 밥도둑이었는데, 아직도 가끔 그 맛이 생각납니다. 생선은 일본 옛 가옥의 화로인 ‘이로리’에서 구워주셔서 훌륭한 맛은 물론이고 낭만이 가득했습니다. 이시카와현에 가시면 노토 지역의 농가 민숙을 꼭 체험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자연 속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노토지구의 시로요네 센마이다©이시카와현관광연맹 / 사토우미 전통 기술 아게하마식 제염©이시카와현관광연맹 

    도리야사이미소에는 (/도리) 들어있지 않다

     일본에서 체득한 겨울 나는 방법 중 하나는 ‘나베’를 먹는 것입니다. 혼자서도 좋고, 홈 파티로도 좋죠. 좋아하는 재료를 마음껏 넣어 즐기는 나베는 JET 시절 저를 살찌우는 큰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겨울이 되면 퇴근길에 채소와 고기를 사서 따뜻한 고타쓰 안에 들어가 혼자 나베를 즐기는 일상. 나베 덕분에 행복한 겨울을 보냈던 제가 나베에 빠지게 된 계기는 바로 ‘도리야사이미소’와의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이시카와현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도리야사이미소

     다른 지역에서는 잘 보지 못하지만, 이시카와현에서는 평범하게 마트에서 팔고 있는 도리야사이미소. 도리야사이미소는 이시카와현 가호쿠시에서 태어난 조미 미소 된장입니다. 도리야사이미소의 기원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이시카와현 가호쿠시에서 기타마에부네(주1)의 화물 중개업(주2)을 경영하던 마쓰야 와헤이씨가 긴 여행에 몸이 축나던 선원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기 위해 고안한 것이 그 유래라고 전해집니다. 도리야사이미소 나베에 생선이나 채소를 넣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영양 밸런스를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도리야사이미소’에서 ‘도리’는 닭을 뜻하는 ‘鶏(도리)’가 아니라 영양가를 ‘섭취한다’는 뜻의 ‘摂る(도루)’에서 따온 것이랍니다.
     이시카와현에는 공예품과 유명 화과자 가게도 많습니다만, 이시카와현을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여행 기념 선물은 꼭 도리야사이미소로 부탁드려요!”
     
    ※주1: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시대에 걸쳐 오사카에서 시모노세키, 홋카이도까지 순회 항해하던 해운선.
    ※주2:화주와 선주 사이에서 화물을 취급했던 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