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JET 프로그램 > Another Sky-일본・두 번째 고향-

Another Sky-일본・두 번째 고향-

  • [사가현]미지의 땅 사가현에서 무지갯빛 청춘을
  • 2026-02-25
  • 천예원

    사가현 2020년12월~2025년4월 CIR

  • 전국의 일본인을 대상으로 ‘여행한 적이 없는 도도부현’을 조사한 결과 사가현이 영광의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일본 자국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인 사가현. 소도시와 모험을 사랑하는 저에게 이러한 환경은 엔도르핀이 샘솟게 합니다. 사가현에서 보낸 4년 5개월은 실로 행복과 설렘으로 가득했으며,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한 챕터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찾은 다채로운 보물들을 여러분께 생생히 전해 드리려 합니다.
     
    1. 우아한 소나무 숲이 푸른 현해탄을 품은 가라쓰시
    사가현 북부에 위치한 가라쓰시는 현청 소재지인 사가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가라쓰 시내에서 굽이진 산길을 따라 조금 더 북쪽으로 달리면 나고야성터에 닿을 수 있습니다.
     
    •국가 지정 특별 사적나고야성터 및 진영터

    사가현의 정체성을 말하는 데 있어서 나고야성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임진왜란을 떠올렸을 때 어떤 지역이 생각나시나요? 보통 한국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노량, 한산도 등 국내의 여러 지명은 자연스레 연상하시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어떤 곳이 배경이 되었는지 알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나고야(名護屋)성은 바로 그 임진왜란의 출발점이 된 장소입니다. 많은 분들이 ‘나고야’라고 하면 아이치현의 나고야(名古屋)를 먼저 떠올리시는데요, 이곳은 전혀 다른 규슈 서북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반도에 가까운 이곳에 전초 기지를 세우고 전국의 다이묘들과 물자를 집결시켜 조선 침략을 지휘했습니다.
     
    •사가현립나고야성박물관

    양국의 불행한 역사가 시작된 무대이지만, 지금은 성터 위에 박물관을 세우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도약하고 있습니다. 사가현립나고야성박물관은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일본열도와 한반도의 교류사’를 메인 테마로 구성하고 있는 보기 드문 시설입니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고, 한국과 일본의 우호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앞장서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관에서는 토요일에 일반인 대상 한국어 강좌를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한국어 스피치 콘테스트를 개최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과 예로부터 깊은 관계가 있는 지역인 만큼, 인근 초·중·고등학교에서는 한국 문화·한국어·한일교류사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해당 학교들에서 한국 관련 수업을 담당하는 것도 국제교류원의 다양한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니지노마쓰바라

    제가 살던 가라쓰는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소나무 숲이 푸른 현해탄 바다를 품은 도시입니다. 니지노마쓰바라는 약 100만 그루의 소나무가 5km에 달하는 해안을 따라 펼쳐진 일본 3대 송림으로, 한국어로 풀이하면 무지개 소나무 숲을 의미합니다. 그 이름의 유래는 가라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가미야마 전망대에 올라 보면 바로 납득하게 됩니다. 파란 바다와 하얀 백사장, 그리고 초록빛 소나무가 층층이 겹쳐지며 부드럽게 휘어지는 모습이 마치 가라쓰만 위에 무지개가 내려앉은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쾌청한 날씨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 숲길을 드라이브하는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Youth)’에는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미지에 대해 그가 말한 어린아이와 같은 탐구심을 품고 일본인에게조차 낯선 사가현을 마음껏 탐험하고 숨겨진 보물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청춘 그 자체로 느껴졌습니다. 무지개 소나무 숲이란 그 이름처럼 사가현의 사계절을 향유하는 제 삶이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듯했습니다.
     
    •가라쓰 버거

    니지노마쓰바라를 달리다 보면 솔숲 사이로 귀여운 푸드트럭이 불쑥 모습을 드러냅니다. 1961년에 창업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가라쓰 버거 본점입니다. 여행자에게는 쉼표 같은 곳이자, 지역 주민에게는 오래된 소울푸드로 원점과도 같은 곳. 레트로풍 마이크로버스에서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철판 위에 패티를 지글지글 구워 차창 너머로 바로 건네주는 방식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반 버거와는 다르게 겉은 바삭하고 속이 부드러운 빵, 고기 맛이 살아 있는 패티, 촉촉한 계란후라이, 두툼하고 고소한 치즈, 풍미를 더하는 베이컨,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수제 데미글라스 소스까지. 이제 포장을 받아 들고서 솔숲을 가로질러 해변으로 나가, 대충 그루터기에 걸터 앉아 먹어야 비로소 완성입니다. ‘가라쓰 버거와 커피의 가게’라는 이름에 걸맞게 커피도 의외의 주인공! 햄버거가 커피와 놀라우리만치 궁합이 좋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해 준 곳이기도 합니다.
     
    •가라쓰성

    가라쓰의 중심을 지키는 랜드마크는 가라쓰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라쓰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인 데라자와 히로타카가 1602년부터 7년에 걸쳐 지은 성입니다. 길었던 전쟁이 종식된 후 역할을 다한 나고야성을 허물고, 그 자재들을 옮겨와 축성했습니다. 성에서 동서로 펼쳐진 송림이 날개를 편 학처럼 보인다고 하여 ‘마이즈루성(舞鶴城)’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방문을 가장 추천드리는 시기는 벚꽃과 등나무꽃이 릴레이로 피어나는 봄입니다. 저는 초등학생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다 함께 김밥을 직접 말아, 벚꽃이 흐드러진 가라쓰성에서 꽃놀이를 했던 날이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도 좋아하는 벤또를 하나씩 사 들고 올라가 탁 트인 절경을 바라보며 먹어 보는 것은 어떠신가요?
     
    •군치

    부임 초반 아직 이 도시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을 때 완전히 가라쓰와 사랑에 빠지게 해 준 결정타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군치입니다.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11월 2일부터 4일까지 개최되는 가라쓰 신사의 가을 대축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으며 가라쓰를 대표하는 행사입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14대의 수레 ‘히키야마’가 행진하고, “엔야! 엔야!” 구호에 맞춰 골목을 채우는 활기는 보는 이까지 자연스레 끌어들입니다. 히키야마를 끄는 ‘히키코’는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주민들만 맡을 수 있고,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이 온전히 계승되고 있어 모두가 힘을 합쳐 함께 만들어내는 도시의 자랑과도 같습니다. 10월부터는 군치를 앞두고 각 마을에서 연일 밤 연습이 계속돼 피리와 북소리가 늦은 시간까지 울려 퍼지기도 합니다. 제게 있어 이 정겨운 소리는 가라쓰에 가을이 찾아왔음을 알려주는 풍물시와도 같았습니다. 주민들은 축제 기간에 집집마다 손님을 초대해 ‘군치 요리’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는데 이 요리 또한 별미! 저는 군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귀국 반년 만에 군치를 다시 보기 위해 가라쓰로 돌아왔을 정도입니다.
     
    •환경 예술의 숲

    가라쓰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 사쿠레이산 중턱으로 올라가면 ‘환경 예술의 숲’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숲을 통해 강을 되찾고 바다를 되찾는다는 취지로, 인공물을 최대한 배제하여 탄생시킨 ‘숲의 공간’입니다.


    숲 초입에 자리한 풍유산장에 들어서면 액자 속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갤러리를 감상하듯 사쿠레이산을 캔버스 삼아 빚어낸 정원을 음미한 후 그 속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세요. 나무와 연못을 벗 삼아 한 바퀴 거닐다 보면, 자연 본래의 힘으로 몸도 마음도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짤랑짤랑 풍경 소리 울려 퍼지는 숨겨진 도자기 마을 이마리시
    이번엔 가라쓰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 이마리시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오카와치야마

    이마리시 외곽에 위치한 오카와치야마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비밀의 도자기 마을’로 불리는 곳입니다. 400여 년 전 정유재란 직후 일본으로 연행된 조선 도공들의 한이 서린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들 중 한 명인 이삼평이 사가현 아리타에서 백자의 원료가 되는 도석을 발견해 일본 최초의 백자를 구워 내면서, 일본에서 자기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영주는 황실과 쇼군에게 헌상하기 위한 이 최고급 도자기 기술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리타의 가마를 이마리의 산골로 옮겼습니다. 거기서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 채 비밀스럽게 운영한 오카와치야마. 끌려온 우리 선조들은 세상과 단절된 채 평생을 도자기만 굽다가 역사의 연기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도자기 다리 너머론 연고 없이 세상을 떠난 조선 도공들의 넋을 기리는 무연탑이 세워져 있어, 지금도 조용히 그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풍경 축제

    오카와치야마에선 매년 여름 6월부터 8월까지 풍경 축제를 개최합니다. 이 시기가 되면 가마와 상점 처마 밑에 도자기로 만든 풍경이 줄지어 걸리고, 바람이 지날 때마다 짤랑짤랑 청아한 소리가 골짜기로 번져 나갑니다. 각양각색의 음색에 발걸음을 얹고서 고즈넉한 산골 마을을 거닐며 마을 곳곳에 스며든 도자기 조형물을 찾아보고, 내 마음에 쏙 드는 풍경을 골라 보는 건 어떨까요?
     
    3. 하늘을 수놓는 열기구가 설렘을 채우는 사가시

    •사가 인터내셔널 벌룬 페스타

    사가는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비옥한 평야와 깨끗한 물, 온화한 기후가 어우러진 도시입니다. 매년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이 평야를 끼고 흐르는 가세강 둔치에선 아시아 최대 규모의 열기구 대회인 ‘사가 인터내셔널 벌룬 페스타’가 열립니다. 투명한 새벽에 형형색색 열기구들이 떠올라 푸른 하늘을 수놓습니다. 밤이 되면 밴드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열기구에 불을 밝히는 라이트업 행사가 또 다른 장관을 선사합니다.
     
    미지의 세계 사가를 함께 훑어본 시간, 어떠셨나요? 아직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사가현에서, 여러분만의 방식과 속도로 이 땅을 경험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 여정 속에서 오래도록 청춘이라 부를 수 있는 순간들을 한 아름 만들어 보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사진 출처]
    사가현 관광연맹: 1, 6, 9, 13, 24
    사가현립나고야성박물관: 4, 5
    ※상기 외 모두 필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