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시, 긴린코 호수
'오이타현은 잘 모르지만, 벳푸나 유후인은 들어본 적 있어요.'
일본 여행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뿐 아니라 일본인에게서도 자주 들었던 말입니다. 살고 있는 지역에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는 건 물론 기쁜 일이지만, 그 이름 뒤에 가려진 지역의 일상과 고유한 풍경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습니다.
저는 약 5년간 오이타현에 거주하며 이곳을 제2의 고향처럼 아끼게 되었고, 국제교류원으로서 지역 행정에 참여하며 오이타의 다양한 장소를 체험하고 소개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한 지역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고향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그곳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는 감정을 직접 겪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행정 구역상 여섯 개로 나뉜 오이타현의 지역 중, 제가 직접 걸으며 마음에 담았던 장소를 중심으로 그 매력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관광 안내가 아닌 그곳에서 살아 본 사람이 건네는 이야기로 읽어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1. 중부 지역 ― 일상 속 평화가 머무는 곳
오이타시, 꿈이 이루어지는 분분당
오이타시, 우스키시, 쓰쿠미시, 유후시가 포함된 중부 지역 중, 오이타시의 ‘옥상 광장(シティ屋上ひろば)’은 도심 한복판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입니다. 오이타역 건물 옥상에 조성된 이 공간은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음에도 널찍한 놀이터와 쉼터, 전망대가 어우러져 늘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당시 저는 현청 근처에 거주하며 퇴근길에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꿈이 이루어지는 분분당(夢かなうぶんぶん堂)’이라는 이름의 작은 탑입니다. 특별한 장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탑 위에 올라 도시의 지붕을 내려다보며 서서히 기울어가는 해를 바라보던 시간이 제겐 참 소중했습니다. 분주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던 순간들. 이곳은 관광 명소는 아니지만, 일상의 풍경 속에서 조용한 평화를 느끼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 싶은 장소입니다.
2. 동부 지역 ― 자연 속에서 느끼는 소중한 힐링
히지 정, 오가 팜 O.lunch
벳푸시, 기쓰키시, 구니사키시, 히메시마촌, 히지정이 속한 동부 지역 가운데, 히지정의 자연 친화형 농장 ‘오가 팜(おおがファーム)’에서는 계절의 정취를 오롯이 즐길 수 있습니다. 업무차 방문했던 어느 가을날, 은은한 색감의 풀꽃이 부드러운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을 보자 따뜻한 가을 날씨처럼 마음이 포근해져 천천히 정원 곳곳을 거닐었던 기억이 납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찾은 농장 안의 카페 레스토랑에서는 직접 수확한 채소로 만든 신선한 샐러드와 갓 구운 포카치아가 함께 제공되었습니다. 따끈한 빵을 올리브 오일에 찍어 먹는 순간, 잊고 지냈던 ‘여유’라는 감정이 마음속에 천천히 퍼졌습니다. 그날의 식사는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나 자신을 소중히 대접하는 한 끼’로 느껴졌고, 그래서 더욱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습니다.
발코니 너머로 들려오던 새소리,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 잘 정돈된 정원 풍경까지. 그 모든 순간이 어우러져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던 그 시간은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3. 남부 지역 ― 섬을 따라 걷는 고요한 시간
사이키시, 규슈 올레 이정표 리본
사이키시가 위치한 남부 지역은 바다와 맞닿은 고즈넉한 풍경이 인상적이며, 사이키만에 있는 ‘오뉴지마 섬(大入島)’에는 제주 올레 재단이 해외에 처음 조성한 트레킹 코스인 규슈 올레의 ‘사이키·오뉴지마 코스’가 있습니다. 사이키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면 시작되는 약 10km 거리의 이 코스는 ‘자연 그대로의 길을 유지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설계되어, 있는 그대로의 섬의 모습을 직접 걸으며 느낄 수 있습니다.
평소 운동을 즐기지 않던 저도 이 길을 천천히 완주한 뒤에 느낀 성취감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섬을 둘러싼 고요한 바람과 파도 소리, 먼저 인사를 건네는 다정한 섬사람들의 미소는 걷는 이의 내면까지 조용히 정돈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걷는 길’이 아니라, 나를 마주하고 돌아보는 여행을 찾는 분께 이 올레길을 추천합니다.
4. 호히 지역 ― 고요함 속에 스며든 멜로디
다케타시, 오카성터
다케타시와 분고오노시가 속한 호히 지역은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함께하는 곳으로, 그중 다케타시의 ‘오카성터(岡城跡)’는 음악과 풍경이 어우러진 뜻깊은 장소입니다.
오이타현에 거주하던 시절, 집 근처에 세워진 작곡가 ‘다키 렌타로(瀧 廉太郎)’의 동상을 보며 그가 어떤 인물일지 궁금해하던 중 이곳을 방문하였고, 그가 작곡한 ‘황성의 달(荒城の月)’이 바로 이 성터를 배경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오카성터는 지금은 봄이 되면 벚꽃잎이 아름답게 흩날리는 고즈넉한 언덕이 되었습니다. 성터 위에서 멀리서 들려오던 멜로디와 눈에 담은 벚꽃, 그리고 돌담의 풍경은 여전히 잔잔한 선율처럼 기억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5. 서부 지역 ― 계절마다 빛을 달리하는 습원
고코노에정, 다데와라 습원의 늦가을
히타시, 고코노에정, 구스정이 위치한 서부 지역은 사계절의 변화가 유독 또렷하게 느껴지는 지역입니다. 특히 고코노에정의 ‘다데와라 습원(タデ原湿原)’은 제가 오이타현에서 가장 아끼고 자주 갔던 곳입니다.
처음 이곳을 찾았던 어느 늦가을 오후, 황금빛으로 물든 갈대밭의 광활한 풍경과 그 사이를 가르는 바람 소리에 잠시 세상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해발 고도가 높은 고원 지대에 위치했지만, 잘 정비된 나무 산책로를 따라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 보면 금세 마음이 차분해지곤 합니다. 계절마다 표정을 달리하는 이곳은 가을의 금빛 풍경과는 또 다르게, 여름이 되면 파란 하늘 아래 녹음이 짙게 우거진 갈대밭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경관을 만들어 냅니다.
오이타현에 머무는 동안 해마다 다데와라를 찾으며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고, 끝나 가는 시간을 배웅했습니다. 단순히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늘 조용히 나를 맞아 주고 고요한 사색에 잠기게 해 주었기에 지금도 제게 가장 애틋한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6. 북부 지역 ― 바퀴 위에서 만난 단풍
나카쓰시, 메이플 야바 사이클링 로드
나카쓰시, 분고타카다시, 우사시가 포함된 북부 지역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중 나카쓰시에 위치한 ‘메이플 야바 사이클링 로드(メイプル耶馬サイクリングロード)’는 자전거를 타며 여유로운 속도로 단풍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길입니다.
총 주행 거리 36km의 이 자전거길은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폭넓게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구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울긋불긋한 단풍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어 가을철이 되면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이기도 합니다. 저는 몇 년 전 초급에 해당하는 약 11km 구간을 달린 적이 있는데, 바람을 느끼며 달리다 문득 멈춰 올려다보았던 단풍 숲의 파노라마 같은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사이클링을 좋아하신다면 몸과 마음에 바람을 채우고 싶은 계절에 이 길을 달려 보시길 추천합니다.
다시, 오이타현으로
오이타시, 오이타역 앞
이렇게 여섯 지역을 따라 제가 사랑한 오이타현의 장소를 간략히나마 소개해 보았습니다. 산과 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오이타현 사람들의 일상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벳푸는 알아도 오이타현은 잘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오이타현을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오이타를 좋아하게 되었냐고요? 그건 직접 오셔서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읽은 당신도 분명 이곳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