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모리현] 일본 어디에 사셨어요? 아오모리현이요? 아…
우리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만나게 되면 자기소개를 합니다. 저는 이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중 하나인데요, 일본에서 3년 동안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면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일본 어디요?’라고 물어오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관광지로 유명한 곳을 떠올릴 때쯤, 저는 ‘아오모리현이요!’라고 대답을 합니다. 한껏 부푼 기대감에 이어 모르는 도시가 나온 것에 대한 당혹감에 굳어진 상대방의 얼굴. 그 얼굴에는 ‘아오모리현이 어디야?’라고 쓰여있습니다. 이제는 이 반응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곤 합니다. 아오모리현을 모르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아오모리현을 소개할 수 있다니. 이건 못 참거든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닫혔던 국경이 열리고 벌써 2년이 지난 요즘, 한일 양국을 찾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만큼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의 일본의 여러 도시들은 한국인에게 마치 옆 동네처럼 느껴지기도 할 텐데요. 저는 그 중에서도 여러분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동북 최북단의 아오모리에 대해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1. 아오모리현?
아오모리현은 혼슈의 최북단에 위치한 현입니다. 면적은 9606km2로 일본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면적을 자랑하지만 인구 약 120만 명이 살고 있는 크지만 작은 현입니다. 경기도의 면적에 수원시민의 인구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혼슈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원시의 숲이 잘 보존되어 있고 아오모리(青森)라는 이름에 걸맞게 푸른 숲과 산, 풍부한 자연에 둘러싸인 곳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시라카미 산지와 도와다 하치만타이 국립공원이 그 예이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공통점으로 아오모리현과 제주도는 2011년부터 우호교류도시로서 교류를 시작, 2016년부터는 자매도시로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오모리현과 제주도는 각각 사과와 감귤로 국내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점과 사투리가 어려워 알아듣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닮은 곳이 많은 두 지역이네요.
히로사키성과 이와키산 쓰타누마의 단풍
2. 뭐가 유명하지?
아오모리현은 전국 1위의 사과 생산량을 자랑하는 사과국으로 유명합니다. 사과주스, 사과파이, 시드르라는 사과주, 사과, 사과, 사과. 사과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제품들을 아오모리에서 만날 수 있죠. 일본 내에서도 아오모리 하면 사과로 통할 정도로 사과로 유명한 곳입니다. 한국에서도 사과는 가장 접하기 쉬운 과일 중 하나인데요, 사과에 얼마나 많은 품종이 있는지 아시나요? 보통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과는 빨간색의 먹음직스러운 사과입니다. 가끔 보이는 파란 사과는 풋사과라고 많이 부르죠.

이 두 사과에는 각각 후지(ふじ), 쓰가루(つがる)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후지를 ‘부사(富士)’, 쓰가루를 ‘아오리’라고 많이 부르는데, 이 두 사과 모두 아오모리현에서 만들어진 품종이랍니다. 후지는 아오모리현의 후지사키정에서 육성한 품종으로 산도가 적고 당도가 높으며 저장성이 뛰어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사과라고 합니다. 국내에는 1970년 충북 영동에서 처음으로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쓰가루는 마찬가지로 아오모리현에서 만든 품종으로 처음에는 ‘아오리 2호’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쓰가루라는 이름으로 정식 등록이 되었는데요, 국내에는 아오리 2호로 불리던 시절에 도입되어 쓰가루라는 이름보다는 아오리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국내에서도 단순히 ‘사과’가 아닌 품종의 이름을 적어서 판매하는 곳이 많아졌는데요, 다음에 사과를 드실 땐 어떤 품종인지 확인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3. 소개하고 싶은 것은?
아오모리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오모리의 소개하고 싶은 것을 나열하자면 풍부한 자연, 맛있는 음식, 사과 등 끝이 없지만, 여기서는 ‘눈과 벚꽃’ 그리고 ‘축제’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핫코다산의 수빙, 오이라세계류, 토와다코 호수, 이와키야마신사
흔히 일본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하지만, 국토의 면적이 약 4배 가까이 큰 일본은 지역에 따라 그 특징이 도드라집니다. 아오모리현은 사계절의 변화가 더욱 선명하고 뚜렷한 지역 중의 하나죠. 봄에는 아름다운 벚꽃을 즐길 수 있고,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고 덜 더운 여름에는 네부타마츠리 등의 특색있는 축제가 열립니다. 가을에는 핫코다산, 시라카미산지 등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 색색의 단풍을 즐길 수 있으며 겨울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눈과 함께 스노보드, 스키 등의 윈터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사계절 모두 특징이 있고 소개할 거리가 넘치지만, 먼저 겨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아오모리의 겨울은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 먼저 시작됩니다. 아오모리의 주민들은 11월이 되기 전에 미리 윈터 타이어로 교체하고 겨울, 특히 눈을 맞이할 준비를 하죠. 11월 중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보통 4월까지 남아있는데, 제가 있던 3년간 아오모리 시내에는 평균 150cm 이상의 눈이 쌓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매일 주차장의 눈을 치우고, 주말에도 수시로 집 앞의 눈을 치웠어야 했습니다. 신발을 발목을 덮는 부츠를 신지 않으면 신발 안으로 들어온 눈으로 양말이 젖어버리고, 인도는 물론 차도까지 눈으로 덮여 길이 사라지고는 했었습니다.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정말 힘들었었죠. 그렇지만 눈이 많이 오는 만큼 스키, 스노보드 등의 윈터스포츠를 맘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눈 내리던 날에 즐기던 노천 온천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특별했지요.
겨울의 추위와 눈을 상대로 4개월 정도 사투를 벌이다 보면 겨울이 끝나고 벚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규슈는 3월부터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데요, 사쿠라 전선(벚꽃 전선)은 조금씩 북상해, 한 달 정도 지나면 아오모리에도 벚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이때의 벚꽃은 정말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아오모리의 벚꽃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길고도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났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매년 약 200만 명의 관광객이 4월이 되면 아오모리의 벚꽃 명소인 히로사키공원으로 모여듭니다. 사쿠라 마츠리, 벚꽃 축제에서 벚꽃을 보기 위해서죠. 한국의 벚꽃 축제에 질린 여러분께 히로사키공원의 사쿠라 마츠리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특히 조명을
밝혀서 더 아름답게 보이는 밤 벚꽃은 히로사키 벚꽃 축제의 명물입니다.
히로사키공원의 벚꽃
겨울과 봄의 이야기 다음엔 여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오모리는 북위 41도 정도로 상당히 북쪽에 위치한 만큼, 여름이 상대적으로 짧고 기온은 그리 높지 않은 편입니다. 약 2주 정도 무더위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가을이 시작되지요. 이 시즌에 아오모리의 각 지역에서는 네푸타, 네부타 마츠리가 열립니다. 네부타는 아오모리 방언으로 ‘졸리다’라는 일본어를 그 어원으로 하고 있는데요, 가을 수확 전의 졸음을 쫓아내기 위한 축제입니다.
아오모리시의 네부타
아오모리현 내의 수많은 지역에서 네푸타 마츠리가 열리지만, 아오모리시의 네부타와 히로사키시의 네푸타가 가장 유명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두 마츠리를 헷갈려 하시는데요, 네부타는 철사와 대나무 등에 한지를 붙여 삼국지나 수호지의 주인공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고 네푸타는 부채꼴의 거대한 수레에 마찬가지로 삼국지, 수호지의 용맹한 주인공들을 그려 넣는 것이 특징입니다. 입체적인 인형 모양인지, 평평한 부채 모양인지에 따라 구분하시면 되겠습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하야시(囃子)의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하야시는 피리, 북 등의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여 박자를 취하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네푸타의 하야시는 느리지만 웅장하고 네부타의 하야시는 빠르고 경쾌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 하야시에 맞춰 네푸타는 야-야-도, 네부타는 랏세라-랏세라-하고 외치는데요, 이 외침이 두 마츠리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네푸타는 히로사키의 각 마을에서 마을주민들과 인근 단체의 사람들이 모여서 제작을 하고 각 마을 주민들이 수레를 끈다면, 네부타는 전문적인 네부타 장인들이 기업이 후원을 받아 제작하며, 하네토라고 하는 춤꾼들이 수레의 뒤를 따라 춤을 추며 이동합니다. 하네토의 옷을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렬에 참가해 랏세라 랏세라 라고 외치며 춤출 수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 네푸타와 네부타지만, 무더운 여름을 더욱 뜨겁게 보낼 수 있게 해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국의 무더위에 지친 여러분! 내년 여름은 아오모리에서 네부타 마츠리를 즐기며 보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히로사키의 네푸타
4. 마치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일본은 한국보다 약 4배 정도 큰 나라입니다. 그만큼 다양한 지역에 다양한 매력이 숨어있죠. 올해 여름까지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의 수가 400만 명을 넘긴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유명한 관광지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위의 도시들은 많이 다녀보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여행지로는 숨겨진 매력이 가득한 아오모리는 어떨까요? 봄에는 벚꽃, 여름엔 네부타/네푸타, 가을엔 국화와 단풍, 겨울의 눈까지. 언제 가더라도 아오모리의 매력을 충분히 즐기실 수 있으실 겁니다. 더 많은 분들이 아오모리의 매력을 알게 되는 그날까지. 저의 아오모리오시(推し)는 계속됩니다. 일본 어디에서 살다가 왔냐구요? 저는 매력이 넘치는 아오모리에서 살다가 왔습니다.
